I. 서 론
이탈리아 페데리카 자코미니(Federica Giacomini) 박사에 의하면, 지역의 작은 유적이 유명한 대표적 유적보다 미래의 문화유산 이용에서 관건이 될 수 있다(이희진, 2019). 이는 국가문화유산 수준은 아니지만 지역 역사를 반영한 문화유산이 해당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고, 이를 통해 지역민의 자긍심 고취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부산 지역은 우리나라 수산업의 중심지이지만 수산문화유산을 발굴ㆍ전승하는 활동이 미진하여 일부 남아 있는 수산문화유산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따라서 부산이 수산업 중심지라는 정체성 제고와 부산 시민의 자긍심 고취를 위해 사라져 가고 있는 수산문화유산의 복원이 시급하다.
수산업은 선사시대부터 이어온 중요한 생업으로서, 그 문화유산은 인류의 주요 역사유물로 보존ㆍ전승될 필요가 있다. 부산 지역의 가장 오래된 유적은 해운대구의 중동ㆍ좌동 유적1)으로, 후기 구석기시대에 형성된 것이다(국립문화유산연구원, 2013, pp. 327-328). 특히 좌동 유적은 후기 구석기시대 전반(3~2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현생 인류가 부산 지역에 최초로 거주한 시점이 최소 2만 년 전임을 알려 주는 유적이다. 하지만 여러 변고로 인하여 구석기시대 이후 부산 지역의 수산문화유산은 제한적으로만 존재한다. 즉, 부산 지역에서 거주가 시작된 것은 구석기시대부터이지만 부산 지역의 수산 관련 유물은 신석기시대의 패총이 가장 오래되었으며,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수산 관련 유적은 확인된 것이 없다. 조선시대 이후의 부산 지역 수산 관련 유물도 실물이 존재하는 것은 일부이며, 대부분은 문헌기록으로만 남아 있다.
부산 지역 수산업사 연구가 일부 있었지만 부산 지역의 현생 인류 거주 시기 전체를 대상으로 수산업 전반을 다룬 수산업사 연구는 없어 부산 지역의 수산문화유산의 전승 및 복원이 어려운 상황이다. 예를 들면, 부산 지역의 수산업사 연구로는 신석기시대 혹은 청동기시대의 패총 연구(김헌석, 2015; 김진백, 2019; 이수연, 2025), 조선시대의 무형 수산문화유산인 좌수영어방놀이 연구(심상교, 2014) 등이 있지만 모두 특정 시기의 특정 수산문화유산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이다. 이는 다른 지역의 수산업사 연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경향이다. 예를 들면, 이동주ㆍ장호진(2012)은 포항 지역의 청동기시대 망어업만 연구하였으며, 유병일(2012)은 영남 지역의 삼한ㆍ삼국시대 패총만 연구하였으며, 이윤선(2004)과 강성복ㆍ박종익(2016) 등도 서남해와 섬진강의 어전어업만 연구하였다. 하지만 수산문화유산의 체계적 보전과 전승을 위해서는 수산업사 전반을 전시대에 걸쳐서 살펴보는 연구가 필요하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수산업사 연구의 방향성과 필요성에 기초하여 무관심 속에서 소멸되어 가는 부산 지역 수산문화유산의 흔적을 찾고 전승을 위한 복원 방안의 제시를 연구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연구 목적에 따른 연구 범위는 공간 측면에서는 부산 지역으로 한정하고, 시간 측면에서는 선사시대부터 근대 일제강점기까지로 한정한다. 그리고 연구 방법은 실존 수산문화유산이 많지 않아 문헌조사를 통한 존재 및 위치 확인을 선행한 후에 현장조사 방법을 통해 공간적 위치 및 유형성 보존 여부를 확인하고, 수산문화유산의 유ㆍ무형성과 현 상황을 고려한 수산문화유산의 전승을 위한 복원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문헌조사는 시대별 발굴조사보고서나 역사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며, 현장조사는 과거 기록의 위치 정보와 현재 주소지를 대비하여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수산문화유산의 복원에 과거 기록과 현재 상황을 비교ㆍ검토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유적지가 다문화적 본성(multicultural nature)을 갖기 때문에 개별 유적지에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특정 시기의 단일 유적만이 존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각 수산문화유적지에는 그보다 앞선 시기 혹은 이후 시기의 또 다른 문화유산, 현재 시설물 등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시대별 문화유산의 중요도와 의의 측면에서 이들과의 공존도 수산문화유산의 복원 과정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 목적 및 방법에 따라 본 연구는 다음 순서로 진행될 것이다. 먼저, 서론에 이어 제2장에서는 문헌 및 현장 조사를 통해 부산 지역 수산문화유산의 아카이브화를 위한 기초 목록을 작성할 것이다. 제3장에서는 부산 지역 수산문화유산의 지역별 분포표를 작성하고 그 특성을 밝힐 것이다. 제4장에서는 수산문화유산의 복원 방안을 유적지와 테마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제5장에서는 결론을 도출할 것이다.
Ⅱ. 부산 지역의 수산문화유산 조사
1. 선사시대 이전 부산 지역의 수산문화유산
본 연구의 대상인 수산문화유산은 수산업 관련 문화유산을 의미한다.「국가유산기본법」제3조 제2호에 따르면, 문화유산이란 “우리 역사와 전통의 산물로서 문화의 고유성, 겨레의 정체성 및 국민생활의 변화를 나타내는 유형의 문화적 유산”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문화유산의 범주는 유형문화유산, 기념물, 민속문화유산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제2조에 정의되어 있다. 따라서 본 연구의 대상인 수산문화유산은 수산업 관련 유형문화유산, 기념물, 민속문화유산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수산문화유산에 대한 문헌 연구는 선사시대 이전과 그 이후로 구분되어 진행되었다. 선사시대(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이전은 역사 문헌이 없으므로 유적지 발굴보고서와 이를 기초로 한 연구논문이 주요 문헌 연구 대상이 된다. 그리고 역사시대 이후로는 실존하는 역사서와 전문서적을 중심으로 문헌 연구가 수행되었다.
부산 지역의 구석기시대 유적지 중 대표적인 곳은 해운대 중동과 좌동 구석기 유적지이다. 이들 유적지에서는 수산업 관련 유물이 발굴되지 않았다. 부산 지역의 수산문화유산 중 가장 빠른 시기의 것은 신석기시대의 패총이며, 패총 유적지는 다수가 존재한다. 김진백(2019)에 의하면, 2019년 기준 발굴조사보고서가 나온 부산 지역 신석기 패총은 16곳이며, 모두 해양성 패총에 속한다. 해양성 패총은 위치에 따라서 외해성과 내만성 패총으로 구분된다(<표 1> 참조).
부산 지역의 대표적 외해성 패총인 동삼동 패총에서는 신석기 초ㆍ중기 자연유물로 어골 35종이발견되었으며, 이 중 상어, 참돔, 대구의 순으로 어골이 많이 발굴되었다. 동삼동 패총에서 발굴된 패각 유물은 99종이지만, 이 중 홍합, 소라가 주종이었으며, 다음으로는 굴 패각이 많이 발굴되었다(Sample, 1974; 金子浩昌・中山淸隆, 1994). 그리고 동삼동 패총에서는 해서포유류 및 파충류인 고래류, 강치, 거북이류 등 17종, 담수 동물인 남생이, 수달 등도 발굴되었다. 동삼동 패총에서 발굴된 인공 유물 중 생산도구로는 낚시 도구, 작살 등의 자돌구와 그물추 등이 발굴되었으며, 장식품으로 추정되는 조개팔찌도 발굴되었다.
신석기시대의 부산 지역 내만성 패총 중에서는 수가리 패총에서 수산 유물이 가장 많이 발굴되었다. 수가리 패총에서 동정된 9종의 어골 중 농어와 대구 어골이 각각 47.5%와 46.8%로 절대 비율을 차지하였다. 37종의 패각과 3종의 해서포유류 및 파충류 등의 뼈조각도 수가리 패총에서 발굴되었으며, 이 중 패각은 참굴이 가장 많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수가리 패총에서 발굴된 인공 유물로는 그물추와 2종의 자돌구가 있다. 신석기시대의 부산 지역 내만성 패총인 범방 패총에서는 백합과 참굴의 패각이 주로 발굴되었으며, 인공 유물로는 낚시 도구, 그물추, 자돌구 등과 조개팔찌가 발굴되었다.
인공 유물 측면에서는 외해성 패총과 내만성 패총 간의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자연 유물 측면에서는 외해성 패총에서는 심해에 서식하는 상어, 참돔, 홍합, 소라 등이 많이 발굴되었으며, 내만성 패총에서는 얕은 수심에 서식하는 농어, 참굴, 백합 등이 많이 발굴되어 패총의 위치에 따른 발굴 수산물의 주종에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부산 지역의 외해성 및 내만성 패총 모두에서 석재 그물추가 발굴되었지만 이를 통해 대량 생산 및 교환이 있었다고 추정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신석기시대의 집단구조는 가족단위여서 대량생산이 요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그 유물을 확인 가능한 신석기시대 부산 지역 패총으로는 동삼동 패총이 대표적이다. 이는 ‘동삼동패총전시관’이 동삼동 패총 장소2) 옆에 2002년 4월 24일 개관하여 운영 중이기 때문이다.
2. 삼한ㆍ삼국시대 이후 부산 지역의 수산문화유산
청동기시대가 되면서 농업이 주요 생업으로 등장함에 따라 패총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이수연, 2025). 하지만 패총 유적은 삼한ㆍ삼국시대에 다시 증가하였으며, 그중 대표적인 부산 지역의이 시기패총은 부산 동래 패총3)이다. 부산 동래 패총은 1930년 동해남부선 철도공사 중 4기의 옹관(甕棺)이 발견되면서 처음 알려진 유적이다. 그 이후 부산 동래 패총은 다세대 주택 건설 등으로 추가 발굴조사가 진행되어 비교적 넓은 면적에 걸쳐서 패총과 철 생산 유구가 확인되었다. 부산 동래 패총에서 발굴된 어구는 맨손어구(빗창), 살상어구(활낚시), 낚기어구(낚시와 봉돌), 후리어구와 덮어구(어망추) 등이다. 이 중 후리어구는 개인용 어구가 아니라 집단용 어구로 다수인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이수연, 2025). 즉, 후리어구는 다수 참여자가 어획물을 분배할 수 있을 정도의 대량 어획이 가능한 어구이다. 부산 동래 패총 지역 주민의 수산물 섭취 사실은 발굴된 사람과 개의 뼈에 대한 안정동위원소분석을 통해서도 확인이 되었다(김헌석, 2015).
망어구 유물은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도 발견되지만, 본격적 망어구 사용을 의미하는 토제 어망추의 발견은 청동기시대 유적지부터이다(김도헌, 2009). 대량 어획 도구인 토제 어망추가 부산 지역의 청동기시대 유적에서는 아직 발굴되지 않았지만, 포항 등의 청동기시대 유적에서는 발굴되었다(이동주 ㆍ장호진, 2012). 부산 지역에서는 철기를 사용한 김해시대(원삼국시대)의 조도패총 1지역에서 토제 어망추가 발굴되었다(국립중앙박물관 발굴보고서, 1976, p. 48). 이는 부산 지역에서 대량 어획이 최소한 기원 전후의 원삼국시대에 비롯되었음을 의미한다. 대량 어획이 가능하려면 전문 어구뿐만 아니라 어로 전문지식도 필요하다. 유병일(2012)도 경주 내륙지역의 삼한ㆍ삼국시대 패총에서 발굴된 강치뼈는 바다 지역의 강치 전문 포획자들과의 물물교환을 통해 확보한 생활 유물로 해석하였다. 경주 서봉총 유적에서도 패류, 어류, 고래류, 파충류 등 다양한 수산유물이 발굴(김건수, 2020)되었다는 사실은 왕실에 수산물을 공납하는 해안 지역의 어업 전문집단이 존재하였음을 의미한다. 신라 4대 석탈해 이사금의 출생과 사망일은 기원전 19년 혹은 기원전 5년~80년 8월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석탈해는 초기에 낚시어업을 직업으로 해서 노모를 봉양하였다. 따라서 동시대 부산 지역에도 어로 전문 집단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부산 지역에서 발굴된 어구들과 내륙지의 수산업 유물을 통해서 부산 지역도 최소한 원삼국시대 이후에는 어로 전문 집단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에는 지역별 토산물, 어구, 어량, 염분 등에 대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삼국유사 권 제3 탑상』에는 992년 김해 사람이 경주 사찰에 소금을 시주한 기록이 있어서 부산 지역 인근에서 소금을 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사』에도 수산문화유적 기록이 거의 없다. 단지 『고려사』 권 제79 지 제33 식화 2의 ‘염법’ 기록에 충선왕 2년(1276년) 당시 경상도에 염분이 174좌, 염호가 195호4)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고려시대에도 경상도에는 염업관련 수산문화유산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지만 숫자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리고 『고려사』 권56~58(지(志) 권 제10~12권)인 「지리지」에도 수산문화유산 기록이 없다. 따라서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는 부산 지역의 수산문화유산을 확인하기어렵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수산문화유산은 다양한 지리지와 읍지 등의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부산 지역의 기록은 『경상도지리지(1425년)』, 『세종지리지(1454년)』, 『경상남도 김해군읍지(1899년)』, 『경상남도 동래부읍지(1899년)』, 『경상남도 기장군읍지(1899년)』 등6)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1910년 발행된 농상공부 수산국의 『한국수산지 제2집(1910)』에도 부산을 포함한 전국의 수산업 실태 조사 기록이 있다. 따라서 『한국수산지 제2집』은 현재와 가장 가까운 시점의 조선시대 수산문화유산을 확인할 수 있는 문헌이다. 19세기 말 부산 지역이 포함된 읍지 중에서 『경상남도 동래부읍지(1899년)』를 제외하고는 모두 어염조 기록이 없고, 물산ㆍ진공 기록만이 있어서 수산문화유산을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19세기 말 편찬된 『경상남도 동래부읍지(1899년)』와 일제 강점기 직전 일본인이 편찬한 『한국수산지 제2집』을 통해 문헌 조사방식으로 조선시대 부산 지역의 수산문화유산을 살펴볼 것이다.
현재 부산 지역 면적의 가장 많은 부분을 다룬 조선시대 읍지인 『동래부읍지』의 어염조 기록은 <표 2>와 같다. <표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부산 지역 해안에는 다양한 수산문화유산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중 가장 많았던 어전은 189고(庫)중 92고(48.7%)가 사하면에 있어서 사하면이 정치망 어업의 적합지였음을 알 수 있다. 염업의 경우, 현재 수영구인 남촌면의 염분이 동래부 염전의 50%인 31좌(坐)로 기록되어 있어서이 지역이 소금 생산의 적합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해선의 경우에는 현재 중구인 부산면, 광선의 경우에는 현재 사상구인 사상면과 사하면에 가장 많았다.
『한국수산지 제2집(1910)』에 기록된 부산 지역 수산문화유산은 더욱 다양하며, 숫자도 많았음을 <표 3>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부산 지역 어촌 대부분은 마을 앞바다에 정치망어업을 하는 어장 혹은 어전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촌의 해변가와 그 앞 해저가 평평한 지역에서는 휘리망 형태의 지인망어업을 하였다. 현재 부산 연안에서 휘리망 어업 또는 정치망 어업을 하는 곳은 거의 없다. 이는 20세기 들어서 부산 지역이 산업화 및 우리나라 관문 역할을 하면서 연안지역이 매립되고 공장 오폐수의 바다 유입으로 많은 어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표 3>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수산지 제2집』에는 『동래부읍지』 어염조 기록과 달리 망어업 기록은 상세하지만 염분 기록은 불충분하다. 예를 들면, 『한국수산지 제2집』의 기장군 편에서는 염업 기록이 없고, 김해군 편에서도 명길면(명호도)에 제염업 성행이라는 간단한 염업 기록만 있다. 반면, 『한국수산지 제2집』에는 조선 자염방식의 향상을 위한 용호출장소의 자염 실험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조선 전기의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동래현과 더불어 기장현과 김해도호부의 염전 기록이 있다14). 특히 김해군의 명호(지)도 염전은 조선시대 대표적 소금 생산지로 전국적 명성을 지녔던 곳으로, 낙동강 수운을 통해 영남의 주요 소금공급지 역할을 하였다. 1907년 통감부 재정감사청의 『염업조사(1907년)』에 의하면, 명지도 염전의 부옥 수는 35개, 염정 수는 470개, 염전 면적은 약 83정(町), 연간 생산량은 124,293석으로 명지도가 대규모의 염전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표 2>에서 본 바와 같이 19세기 말 동래부의 주요 제염지인 남촌면에는 용호동의 분개염전도 있었다. 분개염전은 약 400년 전 개발된 염전으로 부경대학교 내 갯벌 매립지에서 시작하여 용호동으로 옮겨간 염전이다(부산남구민속회, 2001, pp. 171-172). 일본은 1907년에 조선 자염방식의 개량 실험을 위해 ‘용호출장소’를이 지역에 개소하였다. 통감부의 『염업조사(1907년, pp. 12-13)』에 따르면, 당시 용호동에는 조선인과 일본인 소유의 여러 염전이 있었으며, 그 전체 규모는 넓이 6.97정(町), 염정 130개, 부옥 13개 수준이었으며, 연간 생산량은 총 2,584석이었다(유승훈, 2007). 용호출장소에서는 조선 전통자염방식, 일본 자염방식, 양자 혼합방식 등 3가지 소금 생산방식을 비교ㆍ시험하였다(『한국수산지 제1집』, 1908, pp. 594-597).
이처럼 조선시대 말까지 부산 지역은 정치망, 지인망, 염전 등의 1차 산업으로서의 수산업 관련 수산문화유산이 다양하게 존재하였다. 또한 부산 지역에는 2차와 3차 산업 관련 수산문화유산도 다수 존재하였다. 먼저 2차 산업인 수산제조업 관련 수산문화유산 기록을 『조선은행회사조합요록(1921~42년)』15)을 통해 찾아보면, 일제강점기 당시 72개의 부산 지역 수산회사 중에서 수산제조업체는 17개로 23.6% 비중을 차지한다(김진백, 2022). 이들 17개 수산제조업체는 <표 4>에 나타낸 바와 같이 수산물가공업체가 13개, 제염업체가 3개, 제빙업체가 1개였다. 『관보』에는 게재되었지만 『조선은행회사조합요록(1921~42년)』에는 기록되지 않은 업체도 일부 있었기 때문에 부산 지역에 2차 산업 관련 수산문화유산은 더 있을 수 있다.
3차 산업인 수산물유통업 관련 부산 지역의 대표적 수산문화유산으로는 부산어시장이 있다(전우용, 2002, p. 279). 부산어시장의 관리주체는 ‘부산수산주식회사’로 1903년 1월 1일 설립되었으며, 자본금은 60만 원이었다. 부산어시장은 ‘부산수산주식회사’ 앞쪽 해안에 위치하였으며, 당시 거래금액이 가장 많은 어시장이었다(『한국수산지 제1집』, 1908, pp. 367-373). 부산어시장은 1911년에 설립된 ‘부산중앙도매어시장(원명칭: 釜山中央御賣市場)(해양수산부, 2002, p.91)’에 합쳐져서 '부산도매시장 선어부'로 조직이 변경되었다. 또 다른 부산 지역 대표적 수산물 유통 유적지는 소매점들로 구성된 자갈치 시장이다. 당시 부산부 남빈정 1정목에는 해산물 판매점이 즐비하였으며, 이곳이 지금의 자갈치 시장 지역이다. 자갈치 시장의 범위는 현재 ‘영도대교 및 건어물시장~남부민동 새벽시장’ 구간이다. 이곳에는 부산해산상조합이 1934년에 설립ㆍ운영한 ‘해산상조합시장’이 있었다. 이들 대표적 수산시장 이외에도 <표 5>에 나타낸 바와 같이 42개의 수산물 유통업체들이 중구(66.7%), 영도구(21.4%), 동구(9.5%), 기타지역(2.4%) 등에 존재하였으며, 특히 이들 수산물 유통업체들은 중구의 남빈정(남포동, 23.8%), 대창정(중앙동, 11.9%), 변천청(광복동, 9.5%), 본정(동광동, 7.1%), 부평정(부평동, 7.1%) 등에 집중ㆍ분포되어 있었다(김진백, 2022).
기타 수산문화유산으로는 입출어 안전시설인 등대가 있다. 부산 지역의 경우, 제뢰 등대가 1905년 6월에 점등을 시작하여 가장 오래된 부산 지역 등대이다. 다음 해에는 영도 등대가 설치되었으며, 가덕 등대는 1909년에 설치되었다(<표 6>).
부산 지역의 무형 수산문화유산으로는 좌수영어방(左水營漁坊) 놀이, 가덕도의 육소장망 어업 등이 있다. ‘좌수영어방’이란 현종 11년16)에 경상좌수영에 설치한 어방(漁坊)으로 어방은 현대의 수산업협동조합과 비슷한 어촌 공동체이다. 1978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좌수영어방놀이는 수영만 갓후리 어로와 민요를 재현한 놀이로서 수영만 해저에 모래가 많아 휘리망 어업에 적합하여 당시 좌수영 병사의 노동력과 어촌의 어로기술이 결합하여 공동 어로작업을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가덕도의 육소장망 어업은 약 160여년 전에 통영에서 도입된 숭어잡이 망어업이다. 육소장망 어업은 현재 전국적으로 희소한 어업으로 숭어떼가 어망 위를 통과할 때 주위를 둘러싼 6척의 선상 어부들이 동시에 양망을 해서 어획하는 어업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부산 지역의 근대 수산문화유산은 많이 있었지만 2~3차 산업 관련 수산문화유산의 대부분이 사라지고 없는 상태이다. 그리고 1차 산업에 이용된 정치망 및 휘리망 어업의 유적도 대부분 사라지고 해당 지역들만 남아 있다. 따라서 부산 지역의 수산문화유산은 과거 기록은 있지만 현재 그 형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일부 패총, 등대 등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나라의 수산업 중심지라는 부산 지역의 위상과는 매우 상이한 상황이다. 현재 부산의 총생산에서 수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낮지만 부산 지역 역사에서 수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것은 아니다. 부산 지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과거 부산 지역의 주요 산업이었던 수산업의 문화유산에 대한 발굴 및 보존이 필요하나 이에 대한 노력은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부산 시민의 정체성 회복과 자긍심 확보를 위하여 수산문화유산의 발굴과 복원 활동은 수산문화유산이 더 많이 사라지기 전에 시급히 수행될 필요가 있다.
Ⅲ. 수산문화유산의 위치와 지역별 분포 특성
1. 수산문화유산의 위치 추정
부산 지역 수산문화유산은 주로 해안가에 분포되어 있다. 이는 수산업 자체가 수계를 중심으로 성립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산 동래 패총처럼 일부 패총 위치는 기후 변화로 인해 과거에는 해안 및 강변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내륙이 된 곳도 있다.
선사시대 유적은 관련역사 문헌이 없기 때문에 수산문화유산 조사를 고고학적 발굴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부산 지역에서 구석기시대의 수산문화유산으로 발굴된 것은 아직 없다. 하지만 부산 지역의 신석기시대 소비 단계 수산문화유산인 패총은 여럿 존재한다. 부산 지역 패총은 외해성과 내만성 패총으로 분류되며, 외해성 패총은 가덕도 대항ㆍ외양포 패총, 동삼동ㆍ동삼동 상리 패총, 영선동 패총, 조도 패총, 청학동 패총 등이 있다. 그리고 내만성 패총으로는 구평동 패총, 다대포 패총, 범방 패총, 북정 패총, 사구 패총, 수가리 패총, 암남동 패총, 율리 패총, 죽림 패총 등이 있다. 외해성 패총은 아직 해안과 인접 지역에 위치하나, 내만성 패총은 기후변화로 인해 다수가 해안이나 강변에서 다소 이격된 위치에 있다. <표 7>의 부산 지역 패총 위치조사에서 나타낸 바와 같이 신석기시대 부산 지역의 외해성 패총은 모두 섬 지역에 위치하며, 특히 영도구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부산 지역의 내만성 패총은 주로 낙동강 하구에 존재하며, 특히 강서구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어업이 전문화되기 시작한 청동기시대의 패총은 드물지만 삼한ㆍ삼국시대가 되면서 다시 소비단계의 수산문화유산인 패총이 다수 발견되었으며, 부산 동래 패총과 조도 패총 1 지역이이 시기의 대표적 부산 지역 수산문화유산이다. 부산 동래 패총17)은 내만성 패총으로 온천천이 수영강과 합류되기 전(前)인 동래역 인근에 위치한 패총이다. 그리고 조도 패총은 영도구 동삼동의 조도에 위치한 외해성 패총이다. 이들 패총에서는 후리 어구와 토제 어망추 등의 집단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수산문화유물이 발굴되었다. 따라서 당시 이들 지역에는 전문어업집단이 어촌을 형성하고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관련 문헌에는 부산 지역의 수산문화유산 기록이 없다. 하지만 간접적으로는 『고려사』 권 제79 지 제33 식화 2의 ‘염법’ 기록에서 경상도에는 충선왕 2년(1276년) 시점에 염분이 174좌, 염호가 195호 있다고하여 부산 지역에도 염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문헌인 『경상남도 동래부읍지(1899년)』와 『한국수산지 제2집』 등에 의하면, 다양한 수산문화유산이 부산 지역에 존재하였다. 『경상남도 동래부읍지』에 따르면, 당시 부산 지역의 여러 해안 지역에는 많은 어전과 염분이 있었다(<표 2> 참조). 『한국수산지 제2집』은 『경상남도 동래부읍지』보다 발간 시점이 약 10여 년 늦지만 『경상남도 동래부읍지』에 없는 일부 수산문화유산 기록도 있다. 예를 들면, 『한국수산지 제2집』에는 읍지에 나타나지 않는 부산 지역의 어망(휘리망, 세망, 예망, 방휘망 등) 기록들이 많이 있다(<표 3> 참조). 하지만 『한국수산지 제2집』에는 염업 기록으로 용호동 염업시험장(위치: 동래부 석남면 용호리) 기록만이, 그리고 수산물유통 기록으로는 ‘부산수산주식회사’ 기록만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즉, 『한국수산지 제2집』에는 어업 관련 문화유산은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염업, 제조업, 유통업 등에 대한 기록은 부족하다.
수산 관련 제조업체와 유통업체 기록은 『조선은행회사조합요록(1921~42년)』에 다수가 있다. 『조선은행회사조합요록』에는 일제강점기 부산 지역의 수산제조업체(일반 수산물가공업 13개, 제염업 3개, 제빙업 1개) 17개가 기록되어 있다(<표 4> 참조). 하지만 『조선은행회사조합요록』에는 일제강점기 부산에 설립된 재제염 공장으로 3곳만이 기록되어 있어서 1912년 『부산요람 부록(1912)』의 8곳18) 기록보다 적은 기록이다. 또한 일제강점기 수산물유통업체는 ‘부산수산주식회사’가 운영한 부산어시장, ‘부산해산상조합’이 운영한 해산상조합시장 이외에도 42개의 수산물 유통업체들이『조선은행회사조합요록』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 수산물유통업체는 주로 중구, 동구, 영도구 등에 위치하였으며, 특히 중구의 남빈정(남포동), 대창정(중앙동), 변천청(광복동), 본정(동광동), 부평정(부평동) 등에 집중되어 있었다(김진백, 2022).
2. 수산문화유산의 지역별 분포 특성
현재 부산 지역은 16개의 구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해안을 가진 구군은 10개이며, 강(하천)을 가진 구군은 7개이다. 부산 지역에서 강(하천) 혹은 해안을 접하지 않은 부산진구, 연제구, 금정구 등 3곳과 낙동강변의 사상구에서는 수산문화유산이 발굴되지 않았으나 나머지 강(하천)과 해안을 가진 구군에는 모두 어망, 어전, 염전, 패총 등의 순으로 많은 수산문화유산이 분포되어 있다(<표 8> 참조).
부산 지역 수산문화유산 중 대량 어획 수단인 어망과 어전 유적이 많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어업을 생활기반으로 하는 어촌이 부산 지역에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부산 지역이 동해와 남해의 경계지역으로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기 때문에 영양염류ㆍ플랑크톤이 풍부하여 회유 어종이 많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부산 지역 중에서 수산문화유산이 풍부한 구군은 영도구, 서구, 중구ㆍ강서구 등의 순이며, 특히 영도구와 구도심이었던 서구와 중구 지역에 수산문화유산이 많다. 이들 지역 대부분은 조선시대 부산 지역이었던 동래부의 일부를 분할하여 일제강점기에 만든 부산부 소속 행정구역들이다. 부산부에는 일본인 거주자가 많아 수산문화유적 중에서도 수산 제조 및 유통 기업들이 많으며, 이들 대부분은 일제강점기 시작 전후로 설립되었다. 이들 지역은 해안 혹은 하천과 인접하여 어망, 어전, 염전 등도 많이 분포되어 있다. 또한 강이나 바다에 인접한 부산 지역의 구군에는 패총 유적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유적지는 시대별로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어 다수의 문화유적이 동일 장소에 시간대를 달리하며 존재할 수 있다. 즉, 유적지의 다문화적 본성(multicultural nature)은 부산 지역의 많은 수산문화유적지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면, 부산 지역의 대표적 염전인 분개 염전 장소는 지금 부경대학교와 아파트 단지 및 도로로 변화되었으며, 명지도 염전 장소는 지금 주택지와 농지가 되어 있다. 그리고 ‘부산수산주식회사’의 초기 장소에는 현재 롯데백화점(광복점)이 있으며, 부산부 지역에 많았던 2~3차 수산업체들의 장소에는 다른 업체들이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즉, 대부분의 수산문화유적지는 현재 사유지 상태이다. 만약 중앙 및 지방 정부에서 사유지인 수산문화유적지를 복원하기 위해 강제 수용하면 지역민과의 갈등이 심하게 발생될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유적을 공공재로 간주하지만 나라별로 관리방식에 특이성이 있다. 예를 들면, 영국은 문화유산에 대한 사유재산권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지역민과 협조하여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있다(이희진, 2019).
청계천 복원 시 시민들의 의견은 과거 청계천의 완벽한 복원보다는 현 상태에서의 문화유산에 대한 진정성 경험을 원한다는 것이었다(김송이ㆍ박진한, 2018). 이는 과거는 이미 지나간 과거이기 때문에 과거의 의미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Lowenthall, 2015)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미 변화된 부산 지역 수산문화유산의 옛 모습에 대한 완벽한 복원보다는 이들 수산문화유산의 진정성을 현재 상태에서 부산 시민이나 관광객이 경험하고 사회적 의미를 창출하도록 불완전 복원을 하는 것이 더 큰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도 있다. 현재 부산 지역의 대부분 수산문화유산 역시 시대별로 다른 문화적 의미를 갖고 있고 사유재산화되어 있다. 따라서 부산 지역의 수산문화유적지도 수산문화유산으로의 완벽한 복원보다는 영국처럼 현재 점유자의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면서 점유자들과의 협력을 통해 수산문화유산의 불완전 복원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Ⅳ. 수산문화유산의 복원 방안
1. 유적지 중심 수산문화유산 복원 방안
부산 지역의 수산문화유산과 유적지는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많은 변화를 겪었다. 특히 인구가 급증한 20세기 이후로는 도시화로 인해 대부분의 수산문화유적지에 현대 시설물이 건립되어 원형이 보존된 것은 패총과 일부 유통 시장뿐이다. 유적지에 세워진 시설물 소유주와 일반 시민이 가진 문화유적지에 대한 감성은 문화유적의 완전한 복구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문화유산 복구는 문화유적의 완전한 복구를 원한 해남 우수영 복원 사례(최성락, 2018)도 있지만 반대로 현실과의 공존을 원하는 서울의 사직단(김수자, 2020), 청계천(김송이ㆍ박진한, 2018) 등의 복원 사례도 있다. “유적은 불완전한 실체와 관객 상상력과의 불완전한 대화이다(Woodward, 2003)”라는 말이 있다. 즉, 사유재산화된 문화유적의 바람직한 복원 방향은 불완전한 복원을 하더라도 부족한 복원 부분은 문화유적에 대한 관객의 상상 영역으로 남겨 두는 것일 수도 있다. 이는 곧 불완전 혹은 사라진 수산문화유산의 현상태를 수용하면서 미복원 부분에 대해서는 관객이 상상력을 통해 이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수산문화유산의 복원 방안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수산문화유산의 복원은 문화유산의 유ㆍ무형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유형 문화유산의 복원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적용될 수 있다. 그리고 무형 문화유산의 복원에는 ‘일상의 보존과 복원+공공 공간ㆍ장소의 부활’ 혹은 ‘스토리의 복원+공공 공간ㆍ장소의 이입’이라는 2가지 방식이 적용될 수 있다(김영재, 2018).
부산 지역의 유형 수산문화유산 중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패총과 등대이며, 어전과 염전은 모두 형태가 사라진 상태이다. 형태가 남아 있는 수산문화유산에 대해서는 기존 형태를 유지하는 가운데 새로운 구조물을 추가 혹은 공공 공간을 내포하는 ‘기존 형태 유지+공공 공간ㆍ장소의 이입’ 복원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 부산의 현존 유형 수산문화유산인 패총과 등대는 공간이 협소하여 유적지 내부에 공공 공간을 추가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기존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패총과 등대 옆에 해당 수산문화유산의 보완적 구조물을 추가한다면 해당 수산문화유산의 활용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현재 영도구의 동삼동 패총은 전체 패총 영역 중 일부만 보존된 상태에서 그 옆에 '동삼동패총전시관'을 건립하여 해당 패총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등대도 공간이 협소하여 현장 방문 및 활용에 제약이 크기 때문에 인근에 등대 박물관 등의 공공시설물을 추가하면 등대 문화유산의 홍보와 방문자 수를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부산 지역에는 잔존한 형태가 없지만 문헌기록에 의하면, 많은 어전이 해안가에 있었다. 이들 해안가에서는 지금도 회유 어종에 대한 어전 어업이 가능하므로 어전 설치 장소를 조사하여 어전을 재현하고 해안에서 어전까지 도보교를 설치하는 ‘기존 형태 유지+새로운 구조물 덧붙임’ 복원 방법으로 어전 문화유산의 의의와 기능 등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유통 및 제염 회사 등도 영도구, 중구, 동구 등에 많이 있었지만 현재 이들이 있던 장소 대부분은 상업지구로 개발되면서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어 무형 문화유산과 유사한 상태이다. 현재로서는 상업지구화된 이들 지역을 수산문화유적지로 재건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소요되어 실현가능성이 낮다. 따라서 이들 지역의 복원에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면서 해당 지역이나 특정 장소에 대하여 스토리텔링을 개발ㆍ제공하는 안내시설을 도입하는 ‘일상의 보존과 복원+스토리의 복원’ 방법이 적합하다. 현재 중구 남포동 1가ㆍ4가ㆍ5가 지역에는 부산건어물유통단지, 자갈치시장 등이 있어서 일제강점기 수산물 유통의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특히 중구 남포동 1가 지역은 아직 적산가옥이 많이 존재하여 과거 역사에 대한 스토리를 개발하여 기존 무형 문화유산의 복원 방법인 ‘일상의 보존과 복원+스토리의 복원’의 방법을 통해서 수산문화유적지로 복원하는 것이 적합하다.
반면에 무형 수산문화유산인 좌수영어방놀이, 가덕도 육소장망 등은 그것이 행해진 장소만 존재하는어망 어업 수산문화유산이다. 좌수영어방놀이는 해변에서 쉽게 어망 어업을 체험해 볼 수 있는 휘리망 어업이다. 만약 좌수영이 존재했던 수영구의 광안리 해변에서 휘리망 어업의 체험시설물을 설치하는 ‘일상의 보존과 복원+공공 공간ㆍ장소의 부활’ 복원 방법을 활용한다면 광안리 해변의 현재 기능인 해수욕장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어방놀이 수산문화유산의 복원이 가능할 것이다. 수영구 이외에도 기장군, 해운대구, 수영구, 사하구 등의 모래 해변이 있는 곳은 모두 휘리망 어업이 조선시대 말까지 행해졌다. 따라서 이들 지역은 해수욕장 등의 기존 해변 기능을 유지하면서 일부 장소 혹은 시간대를 이용해서 휘리망 체험관을 설치ㆍ운영한다면 수산문화유산의 보존 및 홍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 테마 중심 수산문화유산 복원 방안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어망, 어전, 염전, 수산제조업체, 수산물유통업체 등의 수산문화유산은 대부분 훼손되어 남아 있지 않으며, 패총 및 등대도 유적지가 협소하거나 접근이 어렵다. 전자의 경우에는 수산문화유산 소재지에 이미 다른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이들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기 어렵다. 후자의 경우에는 협소한 유적지 공간으로 인해 수산문화유산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 편의성에 제약이 있다. 따라서 멸실되고 기억에서 잊혀지고 있는 수산문화유산을 전승ㆍ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수산문화유산의 지리적 분포 특징을 고려해서 테마 중심의 시설물 도입을 통한 복원 방법이 유효할 것이다.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부산 지역을 좌우 및 상하로 나누면, 바다와 낙동강이 인접한 부산의 동ㆍ남ㆍ서부 지역에 수산문화유산이 집중되어 있고, 부산의 중앙과 북부 지역인 부산진구, 연제구, 동래구, 금정구 등에서는 수산문화유산이 발굴되지 않았다. 즉, 부산 지역의 수산문화유산은 일제강점기의 부산부 지역, 강서구, 사하구 등 주로 부산 지역의 서부 영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부산부 지역은 현재에도 부산 수산업의 중요 근거지이다. <표 9>에 나타낸 바와 같이 부산광역시수산업통계(2023)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부산시 전체 수산업 부가가치액은 5,564,882백만 원이며, 이 중 구도심(서구, 중구, 동구), 영도구, 사하구 및 강서구의 비중은 82.31%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여 이들 지역은 수산업 중심 지역이다. 현재 이들 지역은 수산업 중심 지역이지만 타 산업시설이 부족하여 도시개발 및 부가가치 생산 측면에서는 낙후된 곳이다. 따라서 수산업 중심지역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산업 근거지였다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수산문화유산의 전승 및 복원을 위한 테마형 시설을 도입한다면 도시 재생 및 활성화가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먼저, 일본인의 주 거주지역이었던 부산부라는 구도심 지역에는 주로 20세기 전반기의 2ㆍ3차 산업 관련 수산문화유적이 분포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부산부 지역 중 남포동 해안 지역은 현재도 수산물 유통이 활발하며, 일제강점기 적산가옥도 많이 존재한다. 이러한 지역을 ‘근현대문화유산지구’로 선정하면, 수산문화유산 복원 비용을 지방자치단체 등의 공공기관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 근현대문화유산 복원 사례로는 전라도의 군산과 목포, 경상북도 영주 등의 역사문화공간 복원 사례가 있으며, 이들 지역은 역사문화공간 복원을 통해 침체된 지역의 재개발과 관광산업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일환으로 남포동 해안지역의 동쪽인 ‘부산남포동건어물도매시장’부터 서쪽인 ‘자갈치시장’까지를 수산업 근대문화유산지구로 개발한다면 건어물 상가와 ‘자갈치 시장’ 등에 대한 추가 관광객 유입을 통한 상권활성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남포동 해안지역은 현재도 다수 수산물 유통업체들이 영업 중이며,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 남포역과 자갈치역과도 가깝기 때문에 수산역사문화라는 스토리를 더한다면 추가 유입되는 관광객들이 많아질 것임으로 수산문화유적의 복원을 통한 상권활성화 효과가 클 것이다.
남포동의 서쪽 지역인 서구에는 전국적 규모의 ‘부산공동어시장’이 있다. ‘부산공동어시장’은 1963년 11월 1일에 ‘부산종합어시장’이란 이름으로 제1부두에 개설되었다. 이후 1970년 8월 12일 개정ㆍ 시행된 <수산업협동조합법>에 의해 명칭이 ‘부산공동어시장’으로 변경되고, 향후 어시장 수요 증가에 대비하여 1973년 1월에 현재의 서구 충무동의 남항 매립지로 이전하였다. ‘부산공동어시장’은 타지역민에게 인지도는 낮지만, 현재 전국 수산물의 약 30%, 고등어 생산량의 80% 이상이 유통되는 대규모 산지도매시장이다. ‘부산공동어시장’은 도매시장이라 생산자와 유통업자들만 주로 출입하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의 인지도는 낮지만 60여년의 역사를 가진 주요 수산물 유통 거점이다. 따라서 수산업에 대한 친밀감과 이해도 제고를 위해 ‘부산공동어시장’ 인근을 중심으로 수산문화박물관을 설치한다면 수산업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인지도 제고 계기가 될 것이다. 현재 북구 지역에 ‘부산어촌민속관’19)이 있지만 다른 수산문화유적지와 격리되어 있고, 장소도 협소하여 일반 국민들의 접근성이 제한적이다. 따라서 수산문화유적이 집중된 서구의 ‘부산공동어시장’ 인근에 수산문화박물관을 설치한다면 수산업에 대한 국민들의 인지도 및 이해를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제21065호)』에 따르면, 문화유산에 대해서는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여 콘텐츠를 서비스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수산문화유산에 대한 종합적 서비스 플랫폼을 수산문화박물관에 구축한다면 온ㆍ오프라인을 통한 수산문화유산의 홍보가 가능할 것이다.
영도구도 부산부에 속했던 지역으로, 조선시대 초기 개항시기부터 일본인이 많이 체류한 지역이다. 이로 인해 영도구는 맞은편 중구와 함께 일제강점기에도 일본인의 주요 사업 거점이었다. 예를 들면, 영도대교와 인접한 영도구 대평동은 수산업과 연관된 조선업체들이 일제강점기부터 많았다. 이로 인해 조선산업 문화유적지인 대평동의 깡깡이예술마을에서는 근대 조선산업의 발상지에 공공 예술 프로젝트를 적용하여 이업종 간의 결합이 시도되었다. 내륙과 반대편인 영도구 동삼동은 대양과 마주한 지역으로 앞에는 조도가 있다. 동삼동과 조도에서는 패총이 발굴되었으며, 동삼동 패총 옆에는 ‘동삼동패총전시관’20)도 있다. 패총은 인류가 바다라는 자연환경을 적극적으로 상대한 첫걸음을 나타내는 기념물이기 때문에 보존 및 전승이 필요하다(鈴木公雄, 1989). 동삼동 패총은 한반도 남부의 최대 패총으로 1979년 7월 26일 우리나라 사적 제266호로 지정되었으며,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추진 중이기 때문에 패총은 보편적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2002년 개관한 ‘동삼동패총전시관’은 규모가 작고 유물이 제한적이라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신안 해저유물을 전시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해양유물전시관’은 1994년에 개관하여 많은 방문객이 방문하였으며,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태안해양유물전시관’은 개관한 지 9개월만인 2019년 9월에 5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방문하였다. 따라서 패총 유물을 이용하여 선사시대의 생활문화를 알려 주는 시설을 개발한다면 많은 관광객 유입으로 지역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부산 지역에는 동삼동과 조도 패총 이외에는 다수의 패총이 존재한다. 이들 패총에서 발굴된 패총 유물들을 함께 전시할 패총 박물관을 우리나라 남부의 최대 패총 유적지인 영도구에 건립하여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을 알려 주면서 수산업이 인류 최초의 생업이었고 향후에도 주요 산업임을 알려 줄 필요가 있다. 패총은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쓰레기 집합소이므로 패총 유물을 잘 활용하면 당시 생활상의 유추가 가능하다. 따라서 패총박물관을 좀 더 확대하여 당시 생활상을 반영한 패총 테마파크를 조성한다면 패총 유물을 통해 밝혀진 선사시대 생활상을 따라 하는 고부가가치의 체험형ㆍ체류형 관광지 개발도 가능할 것이다. 패총 테마파크의 성공가능성은 바이킹 테마파크인 ‘Jorvic Viking Center’21)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Jorvic Viking Center’는 1000년 전 영국이 요크 지역을 정복하기 이전에 거주한 바이킹의 생활을 재현한 테마파크로, 1984년에 개장한 후 2,000만 명 이상이 방문하였다.
어망 및 어전 어업의 수산문화유산 복원의 적합지 중 하나는 부산 지역 서부의 사하구이다. 사하구의 다대포 해변은 낙동강 하구와 인접하여 수량이 풍부하고 백사장이 넓게 형성되어 있으며, 아직도 백사장에서는 조개채취를 할 수 있다. 또한 다대포 해변은 경사가 완만하고 모래지반이기 때문에 과거에는 휘리망 어업이 왕성하였으며, 멸치잡이 휘리망 어업 시 부른 노동요(漁撈謠)인 ‘다대포 후리소리’는 1987년 7월 1일 지방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다대포의 멸치 어업의 경우, 음력 3월 초~4월 말에는 젓갈용 멸치 어획을 하고, 음력 5~6월에는 작은 멸치 어획, 추석 전후~11월에는 가을 멸치 어획이 가능하다. 또한 부산 연안의 경우, 여름철 휴가기간인 6월 말~9월 초까지는 고등어가 회유하는 기간이다. 회유 고등어 낚시는 부산의 전 해안에서 행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사하구의 다대포 낫개방파제권 인근, 영도구의 여러 방파제 인근, 남구의 오륙도 일자방파제 및 선착장 인근, 해운대구의 청사포 방파제 인근에서 고등어 낚시를 하고 있다. 따라서 다대포 해안은 조개 포획, 휘리망 어업, 고등어 낚시 등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말기의 다대포리는 부산 지역에서 가장 많은 12개의 어전ㆍ어장이 있던 지역(<표 3> 참조)이기 때문에 사하구 다대포 인근 지역은 선사 컬포츠 프로그램(prehistoric culports program) 운영 적합지이다. 컬포츠(culports)는 ‘culture’와 ‘sports’의 합성어로 단순한 문화체험을 넘어서 참가자가 스포츠를 하듯이 직접 문화유산의 제작과정에도 참여하는 종합적 문화체험을 의미한다. 기존 어촌체험 프로그램들이 단순히 죽방렴에서의 어로 체험, 갯벌에서의 조개캐기 체험에 그치는 것이라면, 이를 컬포츠 방식으로 전환하면 어로 도구인 그물, 죽방렴, 조개캐는 도구 등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서 어로 체험을 하고, 어획물을 직접 요리해서 먹음으로써 선사시대인들의 생활을 더욱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따라서 다대포 인근지역에 컬포츠 프로그램을 통한 선사시대 식생활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테마 시설이 조성된다면 수산문화유산의 전승 및 복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끝으로, 강서구는 조선시대 최대 제염지인 명지도(명호도) 염전이 있던 곳이다. 『염업조사(1907)』에 의하면, 당시 명지면의 염전 수는 총 37개이며, 염전 면적은 82.86정(町), 생산량은 37,287석(石)이었다. 이러한 명지도 염전의 생산능력으로 인해 낙동강 연안지역의 소금 소비는 대개 명지 소금에 의존하였다. 20세기를 전후하여 저렴한 천일염, 재제염 등이 도입됨에 따라 생산원가가 높은 자염 생산지인 명지도 염전은 크게 위축되었다. 즉, 1922년 경상남도 『도세일반(pp.100-1)』에 의하면, 당시 명지도 염전의 자염 생산량은 1,403만 근인데 반하여 부산항의 재제염 생산량은 약 3,635만 근으로 약 1.6배 더 많았다. 하지만 당시 김해부의 자염 생산량은 경상남도 자염 생산량의 77.5%, 생산금액으로는 67.8%를 차지하였다. 따라서 강서구 명지동(명지도)에 있던 과거 염전시설의 일부를 복원하여 자염 테마파크를 도입한다면 우리나라 전통염인 자염의 홍보 및 수산문화유산의 전승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Ⅴ. 결 론
부산 지역은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지역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유적지도 다수가 존재한다. 특히 선사시대 유적 중에서도 패총은 부산 지역에 다수가 존재하여 당시 부산 지역 거주민들의 생활상을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원삼국시대 이후부터는 부산 지역 수산문화유산에 대한 존재 기록만 있고 그 실체가 대부분 사라진 상태이다. 이로 인하여 부산 지역의 이미지는 6.25전쟁 이후 피난민 도시로 인식되거나 최근에는 서울과 가장 먼 지방도시의 이미지로 국민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국가통계포털(KOSIS) 자료에 의하면, 부산 지역은 연근해어업 생산량이 2025년 추정치 기준 269,478톤으로 전국 1위(27.6%)인 우리나라 수산업 중심도시이다. 하지만 수산업 중심도시라는 부산의 위상에 맞는 수산문화유산의 활용 노력은 미진하다.
문화유산의 복원이란 단순히 사라진 문화유산을 원 상태로 재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앞의문화유산 복원 사례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문화유산 복원은 종국적으로는 이를 활용해서 문화의 고유 성과 국민의 정체성을 획복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려는 것이며, 그 과정에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지역활성화이다. 본 연구에서는 수산문화유산의 복원을 통해 부산이 수산업 중심도시라는 정체성과 명 성 회복을 추구하여 지역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부산 지역 수산문화유산 의 발굴을 위해 현장과 문헌 조사를 통해 선사시대 이후의 부산 지역 수산문화유산의 현재 상태를 조 사하였다. 그리고 수산문화유산의 위치를 기초로 수산문화유산의 지역별 분포 특성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부산 지역의 수산문화유산은 주로 해안과 하천을 가진 구군에 집중되어 있고, 이들 구군은 부산 광역시의 동부, 남부, 서부 등 세 지역에 위치한 행정구역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부산 지역의 수 산문화유적지로는 1차산업과 관련된 어망, 어전, 염전 등이 존재한 유적지가 가장 많았다. 개별 수산 문화유산(기업, 유물, 유적지 등)의 숫자로는 2차 및 3차 산업에 속하는 수산 제조업 및 유통업 관련 유적지가 가장 많았으며, 이들은 부산 지역의 구도심인 부산부 지역에 집중되어 존재하였으며, 설립시 기도 부산부가 존재한 일제강점기에 집중되었다.
수산문화유산의 복원 방법은 유적지와 테마를 중심으로 하는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유적지 중심 복원 방법은 수산문화유물의 유ㆍ무형에 따라 4가지 방법으로 나뉜다. 먼저 유형 수산문화유산의 경우에는 ‘기존 형태 유지 및 새로운 공간 추가’ 복원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이 방법으로 복원할 수 있는 수산문화유산은 패총과 등대 등이다. 패총과 등대 유적지는 공간이 협소하여 유적지 공간만으로는 수산문화유산의 활용가치를 제고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들 공간에 새로운 구조물(박물관)을 추가한다면 이들의 활용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유형 수산문화유산 중 현재 형태가 소멸된 어전과 같은 경우에는 기존 유산을 복구하고 이곳에 대한 접근 구조물을 추가하는 ‘기존 형태 유지 및 새로운 구조물 추가’ 복원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즉, 부산 지역의 여러 해안에 존재하였던 어전을 만들고 어전에 접근할 수 있는 도보교를 추가한다면 어전 수산문화유산의 복구 및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수산문화유산의 유적지가 다른 용도로 개발되어 복구가 어려운 경우는 무형 문화유산의 복구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일제강점기 부산부 지역에 많았던 수산 제조업체와 유통업체들은 이미 해당 공간이 다른 용도로 개발되어 이를 복원하는 것은 비용 측면에서 어렵다. 이런 경우에는 무형 문화유산의 복원에 이용되는 ‘일상의 보존과 스토리 복원’ 방법을 이용하여 해당 지역을 현재 형태로 사용하면서 과거 역사를 스토리텔링식으로 개발하여 안내시설물을 통해 알리는 방식으로 복원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로활동과 관련된 무형 수산문화유산의 경우에도 이미 해당 어로활동이 전개되던 유적지가 다른 용도로 이용되고 있어서 배타적 장소 이용이 가능하도록 복원하기 어려울 수 있다. 예를 들면, 좌수영어방놀이와 관련된 수영만과 광안리 해변은 이미 다른 용도로 전환되거나 개발되어 활성화되어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기존 공간의 기능을 살리면서 수산문화유산의 복원을 시도 하는 ‘일상의 보존과 공공장소의 부활’ 복원 방법을 사용해서 수산문화유산을 복원하는 것이 적합하다.
테마 중심의 수산문화유산 복원 방법은 해당 지역의 문화적 의의를 이용한 테마 설정이 필요하다. 부산 지역의 경우, 지역별로 특정 수산문화유산의 분포 비중이 높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2ㆍ3차 수산업인 수산 제조 및 유통 업체들은 일제강점기 부산부 지역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중심은 남포동 해안 지역이며, 이곳에는 현재도 적산가옥과 건어물 도ㆍ소매점이 많이 있다. 따라서 이곳을 수산업 근대문화유산지역으로 개발한다면 이곳에 대한 전국적 지명도 향상과 관광객 추가 유입 효과로 인해 기존 수산물 유통업체들도 상권활성화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영도구에는 동삼동 및조도 패총이 인접해 있다. 특히 동삼동 패총은 사적 제266호로 지정된 명소이다. 따라서 패총 테마파크를 이들 패총 인근에 조성한다면 현재 쇠퇴하고 있는 영도의 외해측 지역에 대한 활성화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사하구 다대포 해안은 낙동강 하구와 인접한 천혜의 수산자원 보고이다. 다대포 백사장에서는 조개채취, 후리망 어업, 낚시 어업 등이 가능하여 컬포츠(culports)가 활성화될 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다대포 지역은 관광객이 체류하면서 컬포츠를 즐길 수 있는 컬포츠 테마파크의 적합지이다. 그리고 강서구 명지도는 조선 제일의 제염지 중 한 곳이었다. 조선시대 낙동강 연안 마을들은 대부분 명지도 염전의 소금을 공급받았다. 하지만 20세기 초 천일제염업과 재제염업의 도입으로 점차 쇠락하여 현재는 명맥이 끊긴 상태이다. 따라서 명지도 염전의 전통 자염 방식을 복원한 자염 테마파크를 조성하여 전오염의 생산체험을 채함단계부터 전오단계까지 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 전통 소금의 생산과정과 이점을 알릴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부산이 수산업 중심지이지만 그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은 미진하여 이의 복원 방안을 탐색한 연구이다. 이를 위하여 본 연구는 부산 지역의 잔존 혹은 사라진 수산문화유산의 발굴을 위해 역사 문헌 및 조사보고서를 중심으로 수산문화유산을 조사하였다. 이로 인해 본 연구에서 누락된 여러 수산문화유산도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즉, 본 연구는 부산 지역 수산문화유산 복원 연구의 시발점이란 의의가 있지만 누락된 수산문화유산의 존재로 인해 연구의 완전성이 결여된 측면이 있다. 따라서 후행 연구를 통해 부산 지역 수산문화유산의 추가 발굴 및 지역별 특성의 수정 분석이 필요하다.







